밀가루 담합에 칼 빼든 공정위, 20년 만의 가격재결정 명령이 다시 나올까
생활물가를 건드린 담합, 체감이 큰 이유
솔직히 밀가루는 평소엔 잘 안 보이는데, 한 번 가격이 흔들리면 체감이 바로 오는 품목이다. 라면, 빵, 과자, 국수처럼 내 식탁에 바로 연결되는 제품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7개 제분사의 밀가루 담합을 적발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단순히 기업 간 다툼이 아니라 생활물가 전체를 흔든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7개 제분사가 약 6년 동안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맞추는 식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이들이 시장 경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로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액수는 과거 2010년 LPG 담합 사건 때의 6,689억원을 넘어선 수준이다. ㄹㅇ 역대급이라는 말이 그냥 과장이 아니게 됐다.
왜 밀가루 담합이 더 무겁게 보이냐면
밀가루는 원재료 구조부터가 민감하다. 원맥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이런 품목은 국제 시세가 오르면 가격에 바로 반영되고, 내려갈 때도 민감하게 움직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20년~2022년 원가 상승기에는 인상폭과 시기를 맞췄고,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하락분 반영을 최대한 늦춘 것으로 드러났다. 이건 시장이 스스로 가격을 찾는 게 아니라, 업체들이 타이밍을 조절하며 이익을 가져갔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강하게 본 이유도 여기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보조금까지 투입한 시기에도 담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471억원의 지원이 있었는데도 합의는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체감상 이런 부분이 제일 화가 난다. 경기 안 좋을 때 세금으로 버팀목을 만들었는데, 그 틈을 타 가격을 맞췄다면 제재 수위가 세질 수밖에 없다.
7개 제분사와 시장 구조를 보면 답이 보인다
이번에 제재 대상이 된 곳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이다. 이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에서 87.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조사 기준으로는 88% 수준으로도 언급됐다. 즉, 사실상 시장 대부분을 이들이 쥐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 번 담합이 생기면 가격 신호가 거의 통째로 왜곡되기 쉽다.
공정위는 담합 행위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이어졌다고 봤다. 그 기간 동안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 총 24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이 총 55회 열렸다고 한다. 큰 틀은 임원급에서 짜고, 세부 실행은 실무진이 맞추는 방식이었으니, 전형적인 조직적 담합 패턴으로 분석된다.
| 구분 | 내용 |
|---|---|
| 담합 기간 | 2019년 11월~2025년 10월 |
| 담합 횟수 | 총 24차례 |
| 회합 횟수 | 총 55회 |
| 과징금 | 총 6,710억4,500만원 |
| 관련매출액 | 약 5조6,900억~5조8,000여억원 |
가격은 어떻게 움직였나, 숫자가 말해주는 것
이번 사건에서 눈에 띄는 건 가격 변동의 방향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했을 때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 이 정도면 단순한 원가 반영이라기보다, 시장 전체가 한 방향으로 끌려간 느낌에 가깝다. 원맥 시세가 오를 때는 빠르게 올리고, 떨어질 때는 늦게 내리는 구조가 반복됐다면 소비자와 수요업체는 계속 비싼 값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최소 상승폭 ■■■■■■■■■■■■ 38%
최대 상승폭 ■■■■■■■■■■■■■■■■■■■■■■■■■■■ 74%
이 수치는 그냥 숫자놀음이 아니다. 농심, 팔도, 풀무원 같은 대형 수요처가 밀가루를 더 비싸게 사면, 그 부담은 결국 라면이나 빵, 과자 가격으로 옮겨간다. 공정위도 이 부분을 명확히 짚었다. 제빵·제과·제면업체가 원가 부담을 떠안고, 그 비용이 다시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된다는 구조다. 쉽게 말해, 장바구니 물가가 조용히 올라가는 방식이다.
가격재결정 명령이 왜 중요한가
가격재결정 명령은 이번 사건에서 상당히 상징적인 조치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다시 산정하게 만드는 시정명령인데, 공정위가 이 명령을 다시 꺼낸 건 20년 만에 가까운 일이다. 지난 2006년 밀가루 담합 사건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있었고, 당시엔 약 5%의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단순히 과징금만 때리는 게 아니라, 실제 가격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담긴 셈이다.
이번에 공정위가 부과한 조치는 과징금만이 아니다.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하는 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이런 사후 관리가 붙는 이유는, 담합이 한 번 적발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건의 대상 업체들은 2006년에도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한 번 걸렸는데도 다시 했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더 엄격하게 보는 건 당연하다.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조치로서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시켰다.”
이번 사건이 남기는 메시지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은 공정위 사건 중에서도 꽤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단순히 “가격을 올렸다” 수준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이 높은 사업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공급가격과 물량을 맞췄고, 그 과정에서 국가 보조금이 투입된 시기에도 담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런 구조는 시장 신뢰를 무너뜨리고, 결국 소비자와 중소 수요업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또 하나 중요한 건 공정위의 대응 속도다. 이번 사건은 조사 착수 후 비교적 빠르게 전원회의 단계까지 갔고, 검찰도 별도로 움직였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서 공정위와 검찰이 동시에 압박하는 그림은 기업 입장에선 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담합이 단순한 영업 전략이 아니라 민생을 건드리는 범죄로 보는 시선이 분명해진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건이 나올 때마다 “시장에 맡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얼마나 허술한지 다시 느끼게 된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경쟁이 살아 있어야 하고, 정보와 가격이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그 기본이 무너졌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밀가루 한 포대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라면값, 빵값, 과자값까지 연결된 생활물가의 문제다. 그래서 공정위가 이번에 칼을 빼든 건 꽤 상징적이다. 앞으로 3년간의 가격 변화까지 지켜보겠다고 한 만큼, 업계도 예전처럼 슬쩍 넘어가긴 어려워 보인다.
